영남지방에서 소호리 이씨로 불리는 한산이씨의 종가인 대산종택은 한산이씨 집성촌인 소호마을(현 망호리, 일직점곡로)의 안쪽에 서향으로 위치하고 있다. 종가는 넓은 마당을 앞에 두고 뒤쪽에 안채를 배치했으며 안쪽 우측에 방형의 담을 둘러 사당공간을 다로 마련하여 종가의 면모를 갖추었다.
한산이씨 대산종가는 원래 큰 규모의 집이었으나, 일제강점기에 3년가량 집을 비워 두어 화재 또는 퇴락, 유실로 대산서당, 큰사랑 만수재, 초려, 긍암정, 청허대 등은 유적으로만 남고 규모를 조금 줄여 새로 건립하였다.
한산이씨 대산 종가는 이전에 존재하였던 종택을 본보기로 삼아 1930년대에 건립한 근세 한옥으로, 드물게 전통 양식에 따라 건립하여 보존할 가치가 높다.
종가 건물 안채를 정면 5칸, 측면5칸의 규모로 팔작지붕으로 꾸며져 있으며 정면 2칸, 측면 2칸의 대청을 중심으로 좌측에 안방과 식방을 들이고 그 옆에 부엌과 고방을 두었다.
대청우측에는 세로 3칸에 3개의 방이 이어져 있는데 남문 옆의 방이 태실이다.
태실에는 퇴계선생의 학문을 꽃피워 퇴계학을 중흥케 한 대산(大山) 이상정과 그 아우 소산 이광정, 그 아들 이완(교리), 현손 이돈우(이조참판) 그 외증손 정재 유치명이 태어나셨다. 중간문 우측에는 2칸의 사랑방과 좌측에는 2칸의 행랑채로 꾸며져 있다.
사당공간은 내삼문과 사당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사당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로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사람인(人)자 모양으로 맞배지붕이며, 내부에는 불천위로 모시는 대산(大山) 이상정 선생의 내외 신위 옆으로 종손으로부터 4대조 신위내외가 그 옆에 모셔져 있다.